당일치기 천안여행 (feat.알쓸신잡)

2017.12.16(토)

지난 주 목요일 알쓸신잡 천안 편을 보다가 황교익 선생이 먹는 병천 순대가 먹고 싶다는 와이프님 말씀에 주말 즉석 여행이 기획되었다. 연이은 송년회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탓에 병천 순대와 식물원만 테마로 정하고 토요일 오전 느즈막하게 집을 떠났다.

세 명이(비록 하나는 배 안에 있지만) 함께하는 첫번째 여행이다. 한시간 반 정도? 적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와이프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지루할 틈도 없이 청화집순대에 도착했다.

청화집순대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대문 바깥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앞에서 한 남자가 무슨 순대국을 줄을 서서 먹냐고 짜증을 냈는데,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건너편 집은 그나마도 두배를 기다려야 한다면서 달랜다. 알고보니 병천순대거리에는 순대집들이 줄줄이 있는데, 그 중 오래 되고 인기가 많은 곳이 원조집인 충남집과 청화집, 박순자 아우내순대라고 한다. 특히 충남집은 조점례 남문 피순대(전주), 송정3대국밥(부산), 순대실록(서울)과 함께 전국 순대 4대 천왕이라 소개되기도 했단다.

하지만 나도 순대 먹은지 수 십년, 순대국밥을 먹은지도 10년이 되었다. 전주에서 먹은 피순대도 특별난 맛을 느끼지 못했기에,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원조집은 옆에 있고, 나는 알쓸신잡의 발자취를 따라 그 옆집에 왔으니.

청화집순대의 순대와 순대국

하지만, 맛집을 찾으려면 맛집 옆집으로 가라는 황교익 선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잡내가 없고 씹는 맛이 풍부했다. 고기 맛은 또 어찌나 좋은지. 순대맛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다른 블로거의 글에 양보한다. 어쨌거나 오랜 동안 이마트 분당점 지하에서 파는 순대에 순한 양처럼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은 청화집으로 와서 성난 늑대가 되었다ㅠㅜ 우리 부부는 앞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이마트 순대를 못먹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

병천(竝川)을 우리 말로 아우내라고 한다. 병천은 유관순 열사가 3월 1일 만세운동을 겪은 후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와 함께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제의 헌병에 붙잡힌 곳이다. 순대집을 나와 약 1.5km 떨어진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가슴이 아팠고, 또 먹먹했다. 유관순 누나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는데 유관순이 참 앳된 나이에 갔구나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유관순이 꽤나 키가 컸다는 것은 의외여서 놀라웠다.

왠만한 일본 순사들 내려다 봤겠는데? ㅎㅎ

짧은 생애였고 짧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기념관이었지만 여운이 남는 장소였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시위대들 덕분에 태극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빠져있었는데, 태극기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반가웠다.

세계꽃식물원, 그리고 지중해마을

시간이 어느 덧 오후 3시를 지나고 있었다. 세계꽃식물원은 6시에 닫는다. 똥글이에게 꽃을 보여주고 싶은 산모를 위해 서둘러서 식물원으로 이동했다. 겨울에도 정상 영업한다는 세계꽃식물원은 밖에서 보기에는 다소 썰렁했다. 주차장도 한산하고 카페와 식물원 구성은 약간 엉성해보였다.

하지만 꽃은 이름을 알수록, 가까이 볼수록 더 예뻤다.

화려한 꽃만 예쁜 것이 아니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생명을 틔워내고 구불구불 굽이치고 어우러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하고 기특한 것인지.

세계꽃식물원에 피어있는 세계의 꽃

나오면서 화장실을 갔는데 추운 날씨에 김이 날만큼 따뜻한 물이 나왔다. 첫인상보다, 뒷모습이 더 좋은 식물원이었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서, 식사도 할 겸, 중간에 사지 못한 호두과자 대신 호두파이도 살 겸 지중해마을에 들렸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저녁 어둑어둑해서 도착했고 낮에 오지 못함을 아쉬워한 것처럼, 우리도 어둑어둑 도착해서 낮에 오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늦은 저녁 지중해마을

우리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아내는 병천 순대 덕에 입맛과 몸무게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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